어른이 될수록 1년이 빨리 지나가는 이유|시간은 정말 빨라지는 걸까

연꽃 연못과 전통 정자를 바라보는 김모아 에디터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습니다. 새 학년이 시작하고 다음 겨울이 오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력이 넘어가는 속도가 달라집니다. “벌써 여름이야?”라고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연말이고, 새해 인사를 나눈 기억이 아직 선명한데 다시 다음 해를 준비합니다.

시간이 실제로 빨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이고 1년은 같은 길이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 속 시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파도와 푸른 바다가 펼쳐진 여행 풍경
새로운 풍경은 평범한 하루에 기억할 장면을 더합니다.

시간이 빨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시간을 느끼는 감각은 시계처럼 일정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 두 시간은 금방 지나가지만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20분은 길게 느껴집니다. 여행 첫날에는 하루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평범한 평일은 아침에 출근했다가 정신을 차리면 저녁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시간의 속도와 지나간 시간을 기억할 때 느끼는 길이는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즐거운 여행은 당시에는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몇 달 뒤 돌아보면 기억나는 장면이 많습니다. 반대로 반복되는 일상은 하루하루는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몇 달 뒤 돌아보면 특별히 떠오르는 장면이 적습니다.

우리가 “올해는 정말 빨리 지나갔다”고 말할 때는 시계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기억을 돌아보며 시간을 판단하고 있는 셈입니다.

어린 시절의 1년이 유난히 길었던 이유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처음’이 많았습니다.

처음 학교에 가고, 처음 친구를 사귀고, 처음 놀이공원에 가고, 처음 바다를 보고, 처음 혼자 버스를 타기도 합니다. 세상이 대부분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만나면 우리는 평소보다 주변을 자세히 관찰합니다. 장소의 모습, 사람의 얼굴, 냄새와 소리, 당시 느꼈던 감정까지 다양한 정보가 기억에 남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어느 하루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장면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반면 성인이 되면 많은 일이 익숙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익숙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일을 처리하고, 같은 길로 집에 돌아옵니다.

생활이 안정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몇 달 뒤 그 시간을 돌아보면 이런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분명 많은 날을 보냈는데 기억나는 장면은 많지 않다.”

그 순간 지난 몇 달은 실제보다 짧게 느껴집니다.

맑은 하늘 아래 궁궐 풍경
처음 보는 장소에서는 더 많은 장면에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1년의 비중이 작아진다는 설명

시간이 빨라지는 느낌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생각이 있습니다.

10살 어린이에게 1년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10분의 1입니다. 40살에게 1년은 40분의 1입니다. 같은 1년이라도 인생 전체에서 차지하는 상대적인 비중은 점점 작아집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같은 1년을 더 짧게 느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직관적으로 꽤 그럴듯합니다.

다만 인간의 시간지각을 이 비율 하나로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의, 감정, 기억, 생활환경, 새로운 경험 등 여러 요소가 함께 영향을 줍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느끼는 감각이 단순한 시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행을 가면 하루가 길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

여행을 떠나면 조금 이상한 경험을 합니다.

아침에 낯선 숙소에서 일어나 처음 가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지도를 보며 길을 찾습니다. 처음 보는 건물을 지나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고,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게 전부 오늘 있었던 일이었나?”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저장된 장면이 평범한 하루보다 훨씬 많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뒤 사진을 보면 그 효과는 더 분명해집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의 풍경, 처음 먹어본 음식, 길을 잘못 들어 발견한 골목, 우연히 본 노을까지 하나의 여행 안에 여러 개의 기억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은 실제 시간을 늘려주지는 않지만 기억 속 시간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경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다와 도시가 함께 보이는 항구 풍경
여행은 시간을 늘려주지 않지만 기억할 장면을 늘려줍니다.

최근 연구는 기억과 시간의 관계를 조금 더 복잡하게 봅니다

시간이 빨라지는 느낌을 단순히 “새로운 경험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시간지각 연구들은 지나간 시간을 평가하는 과정에 자전적 기억뿐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기억으로 형성하는 능력, 주의, 감정, 시간 압박 같은 여러 요소가 함께 관련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기억나는 사건의 숫자만 세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험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지, 그 경험이 얼마나 선명하게 저장됐는지, 당시의 감정이 어땠는지에 따라 같은 기간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일을 많이 하면 시간이 무조건 느려진다”는 식의 공식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우리의 시간 감각이 기억과 경험의 질에 영향을 받는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해질 무렵 바다를 바라보는 김모아 에디터
익숙한 하루에서도 잠시 멈춰 바라보는 순간은 기억의 표식이 됩니다.

문제는 반복이 아니라 ‘자동으로 지나가는 하루’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매일 새로운 곳을 여행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생활이 나쁜 것도 아닙니다.

익숙함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고, 습관은 매번 모든 일을 새롭게 판단하지 않아도 되게 해줍니다.

문제는 반복 자체보다 하루를 거의 인식하지 않은 채 지나가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보고, 익숙한 길로 이동하고, 일을 하고, 다시 스마트폰을 보다가 잠드는 날이 계속된다면 하루하루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월요일과 목요일의 기억이 크게 다르지 않고 지난주와 이번 주의 차이도 희미해집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면 달력에는 많은 날이 지나갔지만 기억 속에는 몇 장면만 남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요즘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라는 느낌의 일부는 여기서 생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시간을 천천히 만드는 방법이 있을까요

시간 자체를 느리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억되는 시간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거창한 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늘 가던 길 대신 다른 길로 걸어보거나, 가보지 않았던 동네에 가보는 것.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거나 평소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읽는 것. 가족과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거나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습니다.

사진 한 장을 남기거나 짧은 글을 적는 것도 방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SNS에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그 순간을 내가 한 번 더 바라보는 과정입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늘을 바라보면 평소에는 지나쳤을 구름과 노을을 보게 됩니다. 하루를 기록하려고 생각하면 오늘 있었던 일을 한 번 더 떠올리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평범했던 하루에 작은 표식이 생깁니다.

푸른 들판과 산, 구름이 이어진 풍경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새로운 장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결국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이유를 하나의 공식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익숙한 일상이 늘어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새롭게 기억되는 장면이 줄어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한 해가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작아지는 것도 우리가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설명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시계가 측정하는 시간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계 속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입니다. 하지만 기억 속 하루의 길이는 모두 다릅니다.

처음 가본 도시에서 보낸 하루는 몇 년이 지나도 여러 장면으로 남아 있는 반면, 비슷한 일상이 반복된 한 달은 무엇을 했는지조차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을 조금 천천히 느끼며 살아가는 방법도 의외로 거창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새로운 길로 걸어보고,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을 먹어보고, 사진을 찍고, 책을 읽고, 누군가와 오래 이야기해 보는 것.

중요한 것은 매일 특별한 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하루 속에서도 기억할 만한 장면을 하나씩 늘려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느리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을 돌아봤을 때,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갔지?”가 아니라 “그때 이런 순간들이 있었지.”라고 떠올릴 수는 있습니다.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시간을 많이 가지는 일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시간 안에 기억할 장면을 많이 남기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번 주말에는 새로운 것을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평소와 다른 길로 산책을 해도 좋고,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들러도 좋고, 가족과 함께 사진 한 장을 남겨도 좋습니다.

월요일이 되었을 때 기억나는 장면 하나가 있다면, 그 주말은 생각보다 길었던 셈입니다.

시간은 계속 같은 속도로 흐릅니다.

달라질 수 있는 것은 그 시간을 기억하는 우리의 방식입니다.

연못 옆 나무 그늘 산책길
월요일에 기억나는 장면 하나가 있다면 그 주말은 생각보다 길었던 셈입니다.

참고 자료

시간 지각과 기억, 연령에 따른 주관적 시간 경험에 관한 심리학 연구와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의 시간 지각 관련 전문가 해설 등을 참고했습니다.

※ 이 글은 시간 지각에 관한 심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한 교양 콘텐츠입니다. 개인의 시간 경험은 생활환경과 정서 상태 등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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